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노 요코 (문단 편집) == 작품 활동 == 오노 요코는 [[플럭서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명이다. 주로 설치미술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 외에 실험적인 단편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일반인이 범접하기 힘든 관념적인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행위예술과 설치예술은 여러 가지 작품이 있는데 주로 반전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그 주제로 하며 [[아방가르드]]한 소재로 표현을 하였다. 오노 요코의 예술 활동의 시작은 음악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오노 에이스케는 원래 [[피아니스트]]를 꿈꿨으나 사정상 [[은행원]]이 되었으며,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딸 요코에게 대신시키고자 했다. 오노 요코는 어린 시절부터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으나 정작 본인은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기성 교육을 좋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대학 시절에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 등의 [[현대음악]]을 접하고 이에 매료되게 된다. 특히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 [[룰루]] 같은 [[오페라]]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 그녀의 첫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주로 베르크 풍의 12음 기법에 기반한 음악 작품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요코는 자신의 기법이 아닌 기성 작곡가들의 방법론 아래에서 작업하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고, 좀 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게 된다. 오노 요코의 예술관은 1958년 [[존 케이지]]의 실험음악 강좌를 청강하며 크게 변하게 된다. 케이지는 현대 음악의 작곡이 단순한 청각에서 벗어나 시각적, 문학적 요소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미리 작곡된 곡이 아닌 우연성, 불확실성을 기초로 한 자연적 작곡을 강조했다. 이는 이후 오노 요코의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요코는 기존의 쇤베르크식 12음렬 작법에서 벗어나 우연성에 기반한 전위적 음악을 시도했고, 더 나아가 음악을 넘어 설치미술, 영화, 행위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동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 부모로부터 일본의 전통 예술과 문화를 접했고 이를 서양 예술사조와 적극적으로 결합하고자 했다. 1960년대부터 오노 요코는 전위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주로 [[도쿄]]와 [[뉴욕]], [[런던]]을 오가며 활동했으며, 뉴욕의 플럭서스 신의 주요 예술가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요코의 파격적인 작품과 젊은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독특한 위치는 그녀에게 큰 유명세를 안겨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술계 내부의 [[인종차별]], [[성차별]]과 씨름해야 했고, 과도한 유명세는 요코를 마이너한 전위예술계와 대중예술계 사이에서 동떨어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미묘한 입장으로 만들었다. 오노 요코는 이러한 막막한 상황에서 [[존 레논]]과 만났고, [[대중음악]]을 자신의 돌파구로 삼기로 한다. 이후 오노 요코는 1968년부터 존 레논과의 악명높은 합작 '실험 앨범'을 시작으로 대중음악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Yoko Ono/Plastic Ono Band', 'Fly' 같은 [[프랭크 자파]], [[캡틴 비프하트]]를 연상시키는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음악을 했으나[* 프랭크 자파와는 1971년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프리 재즈]]의 전설 오넷 콜먼이나 [[소닉 유스]]의 서스턴 무어와 킴 고든 등과도 협연한 적이 있다.] 70년대 중반부터는 좀 더 팝적이고 듣기 쉬운 음악으로 변화했다. 1981년작 '[[Season of Glass(오노 요코)|Season of Glass]]'에서는 [[뉴 웨이브]]에 경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오노 요코의 음악은 기존의 관습적인 대중음악의 창법과는 거리를 둔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같은 괴성과 비명을 위주로 한 가창, 예측할 수 없는 기괴한 곡 구조 등 상당히 실험적인 성향을 띤다.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음반에 참여한 인물들이 존 레논을 비롯해 [[에릭 클랩튼]], [[링고 스타]], 짐 고든 등 대부분 실험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대중적인 뮤지션들이었다는 건데, 이런 연주자들로도 그녀의 의도대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곡들을 녹음할 수 있었을 정도로 음악적 주도권을 확실히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난해한 음악성으로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레스터 뱅스, [[피에로 스카루피]] 등 일부 평론가들과 마니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지지를 얻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큰 혹평을 받았다. 대중음악가로서 오노 요코의 대표작은 [[아방가르드 음악]]으로는 앞서 언급된 'Yoko Ono/Plastic Ono Band', 'Fly'가, 팝 성향의 작품으로는 'Approximately Infinite Universe'와 'Season of Glass' 등이 꼽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3ahjdOaJ4JE)]}}} || || '''{{{#ffffff Yoko Ono "Cut Piece" Performance Art}}}''' || 주요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은 행위예술인 'Cut Piece(조각내기)'. [[1964년]] [[도쿄]]의 소게츠 아트 센터에서 첫 공연된 이 작품은 그녀의 대표적인 행위 예술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유명하다. 그 내용은 요코가 무대의 중앙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고 그 공연을 구경하는 참가자들이 한 명씩 와서 가위로 [[알몸]]이 될 때까지 옷 조각을 하나하나 잘라 내는 것이다. 요코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연대와 [[사랑]]을 주요 주제로 하여 성(性)과 [[성차별]], 그리고 인간의 고뇌와 [[고독]]으로 인한 거대한 우주적인 고통을 다루고 있다. 존과 그녀를 처음 이어줬다고 알려진 작품도 유명하다. 존 레논이 1966년 처음으로 요코의 전시회에 왔는데 천장에 [[하늘]]이 그려져 있고 [[사다리]]가 놓여있었다. 사다리를 올라가 천장을 자세히 본 존 레논은 거기서 "yes" 라고 쓰여진 작은 글자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긍정적인 메시지에 처음으로 반했다고.[* 존 레논이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이야기들이 많아 둘이 정확히 어떻게 만났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천장의 그림/예스 페인팅(天井の絵/イエス・ペインティング)'이라는 1966년 작품으로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에도 선정된 일본 현대 설치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1964년 출판한 '자몽(Grapefruits)' 작품집 역시 오노 요코의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서적 형태로 된 이 작품은 총 5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천장의 그림'처럼 [[타이포그래피]]와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작품이다. '자몽'은 1960년대 출판 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이며, 초기 [[개념 미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여겨진다. [[페미니스트]]로, '모든 여성은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여성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나쁘지 않다.' 등의 발언을 하였고, 존 레논도 그녀의 영향을 받아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Some Time In New York City]]의 곡인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페미니즘에 관련된 전시회나 작품도 많이 했다. 2001년부터 'YES YOKO ONO'라는 이름의 회고전을 개최해 전 세계를 순회했으며, 이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3년]]에 전시회로 내한을 했었다. 전시회 행사장에 참여하여 그곳에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도자기]]를 깨뜨리는 등의 기괴한 퍼포먼스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날 취재진들이 와서 존 레논에 대한 질문을 몇몇 했으나, 주최측에서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을 엄격하게 통제한 탓에 인터뷰가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이 'YES YOKO ONO' 전시는 2001년 국제 미술 평론가 협회의 최우수 전시 상을 수상했다. 2009년, 그 동안의 예술적 공적을 인정받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오노 요코가 20세기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거물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세부적인 평가에 있어서는 크게 이견이 갈린다. 작품 성향은 순수예술에 가깝지만 대중음악가 [[비틀즈]]의 [[존 레논]]의 배우자로서 유명한 셀레브리티의 자리에 올랐고, 또한 본인의 여러 구설수 등으로 인해 지나친 과소평가와 과대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녀가 그간 예술사에서 전례가 없던 희귀한 케이스임에는 틀림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